2011/12/01 03:09

오타르 이오셀리아니(Otar Ioseliani) 극장


2009년 여름, 이오셀리아니의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극장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월요일 아침>의 한 장면처럼, 극장 문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고 햇살 좋은 낙원의 옥상에 여기저기 늘어진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가 현실에까지 연장된 것만 같았다. 얘기를 직접적으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느낌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영화 속 사람들처럼 부랑자도 실업자도 부잣집 아저씨도 모두 들판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놀다가 자연스럽게 안녕,하고 훌쩍 떠났다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영화는 와인 한 잔 마시고 담배 피며 봐야한다며 조잘거리다가, 도대체 이런 요지경 속 평온함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음악학교를 졸업한 후, 수학을 전공하고, 또 영화학교까지 들어간 이오셀리아니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던 젊은이였던 것 같다. (음악, 수학, 영화 모두 맥락이 이어진다) 실제 이오셀리아니의 영화를 보면 현실은 거지같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오묘하게 평온한 사람들과 풍경의 분위기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따뜻하고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 의외로 치밀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는 계산된 카메라의 움직임 등도 놀랍다. 우연의 만남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유머나 일상의 리듬, 동물과 자연, 인간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영화가 편안한 느낌을 준다고 영화를 만드는 것 또한 편하게 대충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영화에 나타나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이오셀리아니의 생애는 굉장히 다채롭고 불안정했다. 이오셀리아니는 볼셰비키 공산주의에 의해 억압을 받던 그루지아에서 태어났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의 첫 중편 영화는 상영 금지 처분을 받고, 이에 실망한 이오셀리아니는 공장 노동자 생활을 하고, 또 선원이 되어 바다를 떠돌았다. 이후 마음 잡고 만든 영화가 깐느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차례 수상을 하지만, 여전히 국가는 이오셀리아니의 영화를 검열하고,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다. 결국 이오셀리아니는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해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다. 그 때문일까, 이오셀리아니의 영화 안에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면서도, 나라와 사회를 뛰어넘은 보편적인 삶의 형태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를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혼란과 제도에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 혹은 그 혼란 속에서도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활기차게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에서 나오는 물의 이미지를 참 좋아한다. 복작대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훌쩍 떠나곤 하는데 그 느낌이 참 건강하다. 병들고 찌들어 떠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힘들 때도 건강하고 치열하게 힘들고, 떠날 때도 복잡한 것들은 다 던져버리고 건강하게 떠나버린다. 가족도, 사회적 지위도 이미 그들의 머리엔 남아있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휴식과 즐거움을 위해 떠난다. 그러다가 마음 맞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함께 가기도 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첫 영화가 엎어진 후, 이오셀리아니는 영화제작을 포기하고 잠시 선원이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영화에서 산으로 강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때 이오셀리아니의 마음이나, 이상적인 휴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병든 마음을 안고 피를 질질 흘리며 도피 하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몸하나 덜렁 싣고 유유히 여행하는 사람의 건강한 마음을. 이 때문인지 이오셀리아니의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오면 건강하게 위로 받은 느낌이다. 이오셀리아니 나라의 사람들은 타인의 위로와 자신의 책임 안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아간다.

유난히 이오셀리아니 영화에서 속 편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그들의 현실은 절대 편안하지 못하다. 목이 잘리는 순간 윙크하는 여자도, 전쟁이 한창인 동네 언덕에 올라 총성을 뒤로 하고 술 마시며 화음을 맞추는 사람들도, 사회적 지위를 모두 내려 놓고 고향에 내려온 남자도. 어쩌면 병들고 두려워하고 침울해 하는 게 당연할텐데, 이 사람들 너무 편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오셀리아니가 현실을 낙관하며 유유자적한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의 작품 전반을 보면 정치적인 문제, 사회의 문제들 역시 굉장히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다만 그 사회구조를 벗어나 이오셀리아니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던 개인의 이야기들에 주목하고 싶다. 여기에는 조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표류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오셀리아니가 도달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엿보인다. 때문에 그의 영화에는 유난히 길바닥이고 집구석이고 아무대나 주저앉아 자기만의 예술 세계, 학문의 세계를 펼치는 꼬맹이와 노인네들의 모습이 많이 나온다. 나이도, 계급도, 공간도, 시선도 이미 사라진 자유로운 경지. 떠날 때도 모든 것을 내려 놓을 때도 건강할 수 있는 마음. 많은 꿈들과 많은 곳들 사이를 표류했던 꿈 많은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찾은 자유란 이렇게 아름답고 건강한 것이었다.





1 2 3